서론: “정말 자발적인 거래일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건 서로 동의한 거래 아닌가요?”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특히 성의 대가를 전제로 한 관계에 대해서 말이죠.
상대가 성인이고, 그 행위가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전제가 붙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개인 간의 ‘거래’처럼 인식되곤 합니다. 실제로 이런 인식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 심지어 일부 교육 자료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조건이 붙기 마련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의 대가성 관계’라는 말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며,
왜 지금 우리가 언어와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본론: 성 거래의 구조적 현실
1. 단순한 ‘자유로운 계약’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성의 대가성 관계’는 서로 동의한 거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성인 간 합의가 있었고, 금전적 대가가 오갔으며, 양측 모두 이 관계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합니다. 이 관계는 경제적·사회적 힘의 균형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한 권력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쪽은 생계유지를 위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경제적 우위의 입장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곤란한 대학생, 자녀 양육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부모, 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청년 등이 생존의 압박 속에서
‘성의 대가성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요된 결정입니다.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현실의 구조적 맥락을 삭제해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중립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2. 왜 용어를 바꿔야 하는가?
‘성의 거래’, ‘성매매’ 등의 표현은 마치 평등한 두 사람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은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언어는 권력의 비대칭성, 경제적 착취, 사회적 배제 등의 본질을 가립니다.
이제는 이런 표현 대신, ‘경제력 기반의 강제성’, ‘구조적 성착취’,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등의 개념을 사용해야 할 때입니다.
용어는 단지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인식과 구조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성매매’라는 단어는 피착취자에게도 동등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환경 속의 탈출구였다면?
우리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언어의 사용은 구조적 문제를 명확히 드러내고, 사회의 책임을
환기시키는 시작점이 됩니다.
3. 사회적 취약성이 만들어낸 선택
실제 통계와 현장 사례들을 보면, 성의 대가성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빈곤, 저학력, 가족 해체, 학대 경험, 미성년 유입, 채무 문제, 사회적 고립
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조건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접근당하는
사례의 대부분은 SNS나 채팅 앱을 통해 ‘쉬운 돈벌이’로 포장된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금전적 보상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실제로는 위협과 협박, 유도에 의한 착취 구조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성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정폭력이나 이혼, 실직, 질병 등으로
인해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성의 대가성 거래는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자기결정권’의 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언어가 바뀌면 시선도 바뀝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판단을 형성하는 사고의 프레임입니다.
‘성매매’라는 표현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익숙해졌고,
그만큼 구조적 맥락에 대한 감수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이 언어를 대체할 정확하고 비판적인 표현이 필요합니다.
‘경제력에 따른 불균형한 구조’, ‘사회적 강제성에 기반한 성의 제공’,
‘선택의 탈을 쓴 착취’ 등은 비록 길고 불편한 표현일지라도,
구조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질문을 바꾼다면, 시선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마무리하며: 질문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왜 성을 팔았는가?"라는 질문은 개인의 선택을 문제 삼는 시선입니다.
하지만 "왜 성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라는 질문은
구조를 문제 삼는 시선입니다.
전자는 책임을 약자에게 묻고, 후자는 책임을 구조와 시스템에 묻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권과 존엄을 말하는 사회를 원한다면,
이제는 말의 힘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단어 하나가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결국은 사회 구조까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첫 걸음을 함께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 태그: 성매매구조의문제, 성의대가성관계, 경제기반선택, 구조적성착취,
성적자기결정권, 성착취대상청소년, 언어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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